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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과학잡지 에피 2021 여름호

과학잡지 에피 표지

약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강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그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자주 들린다. 그리고 우리는 더 자주 마주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멀리 떨어진 연인과 매일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국 우체부와 정분이 난 누군가 처럼, 우리는 노동자들의 죽음보다는  과도한 상속세를 내야하는 재벌들의 이야기에 더 많이 분노하고 공감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강자의 목소리보다 약자의 목소리를 훨씬 더 잘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강자가 될 확률보다 약자가 될 확률이 높고, 약자가 되었다고 해서 사회에서 배제된, 그래서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짧은, 그런 삶을 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약자가 되었을 때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현재의 약자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지 말아야 한다. 즉,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다른 방면에선 대단히 탁월한 성능을 보여주는 우리의 상상력이라는 능력이, 우리가 약자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데에는 기대에 못미치는 성능을 낸다는 점에 있다. 아무래도 인간은 희망적인 상상에 더 익숙한가보다. 내가 산 복권은 왠지 당첨 될 것 같다는 착각은 쉽게 하지만, 내가 다칠 수 있다는,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심지어는 늙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많은 이들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렇게 부족한 우리의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으려면, 장애인들의 시좌(視座)에서 쓰인 이야기와 주장들이 더 많이 배포되어야 한다. 장애인이야 말로, 우리가 그 입장을 가장 상상하기 힘들어하는, 주변인들 중의 주변인, 가장 배제된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과학잡지 에피의 여름호는 대단히 특별하고 소중하다. “장애와 테크놀로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꾸려진 이번 호에서는 다양한 배경의 필진들이 여러가지 차원에서 장애와 기술, 그리고 사회의 관계들에 대해 논한다. 평소에 장애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던 사람은 물론,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원의 문제들을 소개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특별히 흥미로운 구성은, 정신장애와 이를 “치료”하는 약물의 관계에 대해 다룬 「아빌리파이, 매드프라이드, 그리고 화학적 사이보그」(이하 「아빌리파이」) 와 과학소설 「제, 재」에 대한 것이다. 어떤 소수자성을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정상적이고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유구한 버릇에 대해 많은 반성이 있어, 이제 왼손잡이를 교정하거나, 빠르거나 늦은 혼인 등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행태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장애, 특히 정신장애를 공포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풍토는 만연하다. 그래서 누가 어떤 손으로 밥을 먹든 본인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오늘날에도,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처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아빌리파이」의 논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극단적으로 보이는 듯 하다.

한 편, 잡지의 말미에 수록된 천선란 작가의 단편소설 「제, 재」 는 바로 이 정신장애를, 정신장애인의 시좌에서 서술한다. 주인공의 몸에는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유능한 “재”이고, 다른 한 쪽은 상대적으로 무능한 “제”이다. 소설 속에서, 유능한 “재”는 무능한 “제”를 없애고 싶어하고, “제”는 당연히도 살고 싶어한다. 사회는 유능한 천재인 “재”를 더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살고 싶어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의 말미에 이르면 결국 “살고 싶다”는 “제”의 반응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임을, 그가 상대적으로 덜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하여서 제거 되어도 좋은 존재가 아님을 독자는 스스로 외치게 된다. 그 결과, 「아빌리파이」의 논지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웠던 많은 독자들 조차, 그 논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든다. 

과학잡지 『에피』의 이번 여름호는, 이 외에도 장애인들을 고객으로 하는 소셜 벤처 사업가들의 이야기, 우여곡절 끝에 고가의 전동 휠체어를 얻은 일이 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또 바꾸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이베슬론(하지 장애인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만드는 로봇)을 만드는 발명가의 이야기가 아닌 사이베슬론에 탑승하는 파일럿의 이야기 등,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줄, 귀기울일 가치가 충분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한 목소리가 가득 담겨있는 과학잡지 『에피』의 이번 여름호를 적극 추천한다.

Published in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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