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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피엔스

무지로 가득찬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다른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 또 왜 다른가”와 같은 질문들은 오래되었지만 충분히 답변된 적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이 질문이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대답 조차도 선명하다고 종종 착각 하고는 한다. 예컨대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있다”, “이성이 있다”, “도구를 사용한다” 와 같은 명제들이 위 질문들에 대한 충분한 답변인 것 처럼 둔갑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피엔스』는 이 아주 오래된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품위있게 접근하는 법을 보여 준다.

책은 총 4가지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지혁명」에선, 인간의 여러 능력 중 “추상적인 개념을 인지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이 다른 종을 압도 할 수 있었던 기원 이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추상적인 개념(종교 등)을 공유 할 수 있었기에, 전혀 모르는 타인들과 협업을 할 수 있었고, 훨씬 더 큰 규모의 협업을 통해 대형 포유동물은 물론이고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친척들을 멸종 시킬 술 있었다는 것이다.
2장 「농업혁명」에서는, 농업이 어떻게 인간 종의 개체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농업을 통해 단위 면적 당 생산 가능한 식량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부양 할 수 있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훨씬 더 큰 규모의 협업이 가능해지고, 인류는 훨씬 더 큰 힘을 손에 넣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3장 「인류의 통합」에서는, 돈, 종교, 제국등이 인류에게 수많은 해악을 끼치면서도, 동시에 훨씬 더 큰 규모의 협업과 그로 인한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4장 「과학혁명」은 분량면에서나 중요도에서나 책의 핵심을 이루는 장이다. 여기서 저자는 “무지를 인식하는 능력”이 어떻게 새로운 차원의 진보를 가능케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지식들은 모두 선현이나 사제, 성서등에 의해 모두 알려졌다고 생각했다.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큰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성서 등을 기반으로 그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기반으로 각종 상징들로 빼곡한 세계지도를 그렸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이러한 세계지도가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다. 지도 대부분이 공백인 형태로. 비어있는 세계지도는 지적 탐구심과 제국주의적 정복욕을 자극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전 지구를 탐험하고 지식을 쌓고, 또 정복해 나갈 수 있었다.

무지의 발견은 다른 한 편으로 가능성의 발견이었다. 그 이전까지, 인류에게 역사의 흐름은 쇠퇴의 과정이었다. 언제나 좋은 시절은 과거였다. 성경에선 에덴동산 시절이 황금기였고, 유학자들은 요순시대 또는 주나라 시대가 황금기였다고 말했다. 이후의 역사는 언제나 내리막 길이었고, 지식인들의 목표는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심지어는 과거보다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희망은 더 적극적인 탐구를 부채질 했고, 그 탐구의 노력들은 보상받았다. 그리고 이 보상은 다시 새로운 탐구를 부채질했고, 그 결과 인류의 지식과 역량은 지난 수백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사피엔스』 는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다른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 또 왜 다른가”라는 질문에 대해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답안을 제시하는 책처럼 보인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사피엔스』 는 지식을 전달하는 책으로서 보다는 무지를 전달하는 책으로서 훨씬 큰 가치를 지닌다.

사실 1장의 핵심은 인류가 어떻게 인지혁명을 통해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도구를 사용해서”라던가 “직립보행을 해서”라던가 와 같이 단순하게 설명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주요 내용이다. 책은 그저 “도구를 사용하고 직립보행을 하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사라졌을까?” 와 같이 우리가 평소에 던져 보지 못했던 재밌는 질문들을 던지고, 이런 질문들에 어느 정도 공감가는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가설 중 하나를 소개할 뿐이다.
2장도 마찬가지다. 책은 인류가 농업을 통해 번창 했다는 점 보다는, 농업이 오히려 인간 개개인의 삶을 더 열악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농업을 하면서 인간은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악한 식사를 하고, 또 단일 품종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흉년이 들면 굶주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인류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에 뛰어들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농업에 뛰어들었다가 문제를 인지한 다음에라도 다시 수렵생활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와 같은 재미있는 질문들이 오히려 더 핵심에 가깝다.
3장과 4장도 같은 기조가 유지된다. 다만 4장에 이르면, 책은 우리의 무지를 드러내는데서 그치지 않고, 왜 무지의 발견이 인류 발전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우리의 무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무지의 가치를 설명하는 서술 방식은 독서의 즐거움을 극대화 시킨다.

『사피엔스』 는 두꺼운 책이다. 그리고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단순하지 않음을, 더 다양한 설명 방식과 가능성이 있음을 역설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식보다는 무지를 선사하는, 그래서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이런 종류의 양서를 읽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Published in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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