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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람들은 우리 앱을 못 쓴대요”라는 버그의 심각성은?

접근성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반응이 있습니다. “접근성 지원, 좋죠. 그런데 지금은 당장 돈을 벌어야 해요. 장애인들을 위해 추가적인 고려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 와 같은 반응이지요.

언뜻 일리 있어보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답변에는 장애인에 대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오해와 차별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접근성 지원이 더 복잡한 코드로 이어진다는 오해

적지 않은 분들이 “접근성”을 고려해 개발한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코드를 연상하는 것 같습니다.

if 장애인 == true {
  ///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처리를 하는 코드
else {
  /// 비장애인을 위한 코드
}

이런 식의 if문 분기처리가 많아지면 코드의 복잡도가 올라가고 이는 관리하기 어려운 제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접근성을 지원하다보면 기존보다도 더 간결한 코드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접근성 지원, 개발자의 빠른 성장을 도와줍니다“라는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위 글의 핵심만 간추리자면, iOS, Android, Web등 모든 플랫폼에서는 UI관련 API들을 만들 때 모두 접근성 지원을 염두에 두고 만듭니다. 그런데 접근성 지원이 고려된 API를 활용해 만든 제품에서 접근성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API를 의도에 맞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요. 거꾸로 접근성을 고려하며 제품을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해당 API들을 그 의도에 맞게 쓰게 됩니다. 따라서 불필요한 코드가 줄고 더 간결한 코드가 나오게 됩니다.

접근성 지원이 어렵다면, UI관련 API를 사용하는 Best-Practice를 알기가 어려운 것이지, 결코 접근성 지원이 코드의 복잡도를 높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거꾸로 말해, 여러분의 제품에서 접근성 지원이 잘 되고 있지 않다면, 코드의 복잡도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이 숨어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67만명이 앱을 못 쓰는 버그, 방치 하실 건가요?

여러분이 서비스하는 앱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대구 사람들은 아예 쓸 수 없다고 해봅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 일까요? 아마 어떤 서비스를 하고 있더라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새벽중에라도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문제가 해결되면 공지사항도 올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과문도 올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문제가 오래 방치된다면 분명 대구분들의 분노에 넘치는 문의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아마 이런 형태이지 않을까요?

이 앱 대구에서만 안 된대요. 정말 어이 없어서. 대구 사람들 차별하나요? 왜 대구에서만 안 되는 것이지요? 서울 사람들은 이 앱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는데 왜 대구 사람들만 못하게 해요? 대구사람들은 XX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요?

이런 리뷰들이 앱스토어에 쌓이면 회사가 아무리 가치있는 임팩트를 전달하려 한다 해도, 그 진정성이 고객에게 전달 될리가 없습니다. 시중에서는 “대구 사람들 차별하는 앱”으로 통용될 것이고, 심지어는 대구 사람들로부터 법적인 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장애인들에게 일어난다고 하면 그 심각성은 훨씬 낮게 취급됩니다. 2017년 기준으로 국내 장애인 인구는 약 267만명 정도입니다. (참고: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웬만한 광역시의 인구 정도이지요. 대구 사람들이 우리 앱을 못 쓴다고 하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장애인이 못쓴다고 하면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 바로 차별입니다.

장애인이어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입니다.

흔히들 장애는 의료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주 오랜 기간동안, 장애를 의료적 관점에서 정의한 “의료적 모델”이 장애를 바라보는 기본 시선이었습니다.

1980년에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국제손상장애핸디캡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ies and Handicaps, ICIDH)는 장애에 대한 최초의 국제적 정의인데요, 이에 따르면 장애인이란

  • 어떤 사람의 몸에 손상이라고 간주 될만한 이상이 있어서 (손상)
  • 무엇인가를 할 수 없게 된 상태에 빠져(장애)
  •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핸디캡)

으로 정의됩니다. 즉, “손상”이 있어서 “장애”가 생기고, 그에 따라 “차별”이 따라온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두 머릿속에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장애의 개념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한 정의처럼 보입니다.

예컨대 이 정의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이란,

  • 눈에 문제가 생겨서(손상)
  • 스마트폰을 볼 수 없어서(장애)
  • 앱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핸디캡)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똑같은 시각장애인인데, 어떤 앱은 쓸 수 있고 어떤 앱은 쓸 수 없습니다. 시각의 손상이 문제의 원인이라면, 시각장애인은 언제든 앱을 쓸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앱은 쓸 수 있고 어떤 앱은 쓸 수 없다면, 문제의 원인은 “시각장애인이 쓸 수 없는 앱”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아니, 시각장애인이 앞을 못 보는데 앱을 어떻게 써?”라는 의문이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영상, 또는 이런 영상(한국어)들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컨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으로 분류됩니다. 즉

  • 귀에 문제가 생겨서(손상)
  •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어서(장애)
  • 대화가 어려운 사람(핸디캡)

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끼리 있을 때, “대화가 어려운 사람”은 없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은 그들끼리 수어를 통해 원활하게(청각장애인이 모두 수어를 한다는 생각도 사실은 편견입니다만) 소통합니다. 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때는, 오직 청인이 청인의 언어로만 대화를 걸어올 때입니다. 생각해보면 한국어를 모르는 영국인과 영어를 모르는 한국인간에 대화가 되지 않을 때, 보통은 그 원인을 “둘 중 누구도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둘 중 한 사람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청각장애인과 청인의 대화에서 문제가 생길때만 우리는 청각장애인의 청각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순간은 일상생활 속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통역사를 고용하던, 번역앱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의사소통의 단절을 극복합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에게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청각장애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청각장애를 “고치거나 극복할 것”을 강요합니다.
버스를 타기 어려운 순간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큰 짐을 가지고 있거나 불편한 옷을 입었을 때, 우리는 버스의 계단을 오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 조금씩 짐을 나눠들거나 서로의 손을 잡아줌으로써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만약 버스가 40대 남성들은 타기 어려운 형태로 만들어졌다면, 이런 부분을 개선한 버스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뉴스에서 매일 다루어졌을 것입니다.
지체장애인이 버스를 탈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신체가 버스에 알맞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장애인을 “우리”의 일부로 여기지 않고, 그들을 배제한채 버스를 디자인하고 운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인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체의 손상이 곧 행동의 불능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행동의 불능은 그보다는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생깁니다. 이렇게 장애(disability)의 원인이 사회에 있다고 보는 관점을,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케이스, 평소에 대응 안하시나요?

여기까지 읽고나서도, 제 글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장애라는 것은 소수의 특수한 문제가 아닌가? 그렇게 특수한 경우까지 모두 헤아려가며 제품을 만든다면, 도대체 어느 세월에 제품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걸 못한다고 누군가를 차별한다고 말 할 수 있나?” 와 같은 반응이 그 대표적 예시일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애”와 연결지어서 따라오는 단어에는 “특수, 특별”와 같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교육은 특수교육이고 그런 아동들이 있는 반은 특수반이었지요. 그렇게 “특수”한 사람들을 우리 사회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늘 분리해 왔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은 “우리와는 뭔가 다른, 또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깊이 박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에 “일반적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애초에 “일반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울에 사는 2~30대 군필 남성 대기업 직장인 정도면 일반적인 걸까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많은 제품들이 서울사는 2~30대 군필 남성 대기업 직장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성인 남성들에게는 무해하지만(괜찮아보이지만) 유아에겐 치명적인 가습기 살균제가 팔리고, 군대용어가 마케팅 용으로 쓰이고, 노인들이 보기에 너무 작은 글씨로 메뉴판이 만들어지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볼 수 없는 화장실 간판이 나오고, 프리랜서 처럼 주기적인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고려되지 않은 정부정책들이 나오고, 태풍이 와도 “서울을 비켜가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뉴스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국에 2~30대 군필 남성 대기업 직장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성공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정말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만을 신경쓰면 되는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기획자와 디자이너, 개발자들은 새로운 “엣지케이스”가 나오면 이것에 대응하려고 하지 무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너무 느린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앱을 쓸 수 있도록 만들고, 다른 로케일을 쓰는 고객의 앱에서 크래시가 나면 그것을 고치고, 샤오미 폰에서만 UI가 깨지면 고치고, iPhoneSE에서만 어떤 버튼이 가려지면 그것을 보이게 하고, 어떤 화면에 들어갔다 나온 유저에게만 네비게이션바 타이틀이 숨겨진다면 화들짝 놀라며 핫픽스를 합니다.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아마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버그”라는 것이 나올 때, 보통 그것은 “일반적인 사용 사례”에서 재현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견 되었겠지요. 그렇게 나중에 발견된, 특수한 상황에서만 발생되는 버그들을 “특수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사람은 전 아직까지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즉, 우리가 장애인의 사용사례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이 “특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특수한 사례들에 대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애인의 사용사례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우리와 상관 없는 사람, 챙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차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차별을 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분명 기분 나쁜 일입니다. 누구도 스스로 원해서, 또는 의식하면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들이 성소수자를 차별 할 때, 남성 면접관이 여성 지원자를 차별 할 때, 서울 방송이 지방의 재난을 무시 할 때, 백인들이 “흑인들의 범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할 때, 그들 누구도 그것이 “나쁜 줄 알지만” 차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도들은 “성소수자들이 죄를 지을까봐 가여운 마음에”, 남성 면접관은 “지원자가 여성의 행복을 찾았으면 해서”, 서울 방송은 “당연히 서울이 제일 중요하니까”, 백인들은 “동네의 치안을 위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차별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차별들은 무지에서 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정체성이 있다는 것,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 지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흑인의 범죄율이 높은 것은 흑인들이 취업이나 진학에서 많은 차별을 받아 충분한 보수를 받는 직업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 등등을 알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때 차별은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양한 IT인력을 양성하는 많은 교육과정들에서 접근성 지원에 대한 부분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거나 아예 다뤄지지조차 않는 현실이라고 봅니다. 전문인력으로 양성되는 교육과정을 거치면서도 접근성 지원을 전혀 “배워야 할 것”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한채 해당 과정을 수료하고 필드에 나가 업무를 수행하고 경력을 쌓고 연봉을 높이면서도 아무도 주변에서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 장애인에 대한 고려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기전까지, 당신이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면, 당신은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만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장애인들을 특수반에 몰아넣은 학교, 장애의 “극복”을 감동적으로 그린 TV 방송, 접근성 지원이란 개념을 가르치지조차 않은 교육과정들, 그 외 수많은 사회적 장치들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고난 이후에는, 전 여러분이 좀 더 불편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는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별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차별이 지속되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장치들 때문에 무지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그 사회적 장치들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IT, 즉 정보기술은 정보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큰 존재 이유입니다. 특정 대학교 도서관에만 있던 자료를 전세계 어디에서든 접근 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에 웹이 위대한 것이고, 그 자료를 지하철에서도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에 스마트폰이 혁신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 접근성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높아지는 것은, 거꾸로 그 특정 부류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큰 차별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 차별을 허물어낼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우리는 방기 해서는 안 됩니다.

참고자료

Published in 프로그래밍 회고, 또는 의견

48 Comments

  1. pc_nazi pc_nazi

    “장애인들을 위해 추가적인 고려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라는 게 차별이라면 저는 궁금한 게 현재 이 블로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 장치가 되어 있나요? 만약 그런 게 안 되어있으면 이 글을 쓰신 본인께서는 차별을 하고 계신 건가요?

    UX관점에서 한 서비스의 affordance라는 건 사용자의 역량에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어떤 서비스가 젊은 유저층을 타겟으로 하고 있으면 젊은 유저들이 익숙한 것에 대한 설명을 따로하지 않고 바로 사용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대다수의 유저가 쓸데없는 튜토리얼을 거침으로써 귀찮게 안 하는 좋은 UX입니다. 한 서비스가 본인들이 주 타겟으로 삼는 쪽에 본인들 서비스의 affordance를 맞췄다고 타인에게 그게 차별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그 서비스의 타겟 유저를 가정할 때 역량을 최소한으로 잡아야 하는 게 타당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서두의 논지를 다뤄보겠습니다.
    추가적인 고려를 할 여유가 없다는 게 차별이 숨어있는 발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글은 한국어로 밖에 안 쓰여져있습니다. 외국인이 이 글을 보고 싶은데 그 외국인의 언어로 이 글이 제공이 안 되는 건 차별인가요? 글쓰신 분이 글의 타겟으로 삼은 사람들이 한국의 개발자들이라고 해서 외국인들을 위해 추가적인 고려를 일일이 하면서 블로그 글을 쓸 여유가 없다는 거, 게으름인가요? 한국의 개발자면 한국어를 할 수 있어야만 하나요? 세상의 모든 언어로 다 제공하실 의향은 있나요? 지금까지 존재를 몰랐던 언어로 번역을 제공하지 않는 건 무지에서 오는 차별인가요?

    이 댓글을 읽기전까지, 글 쓰신 분이 외국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글을 쓰고 계셨다면, 당신은 외국인을 차별하고 있었던 건가요? 외국인들을 외국인이라고 부르는 사회, 언어의 “학습”을 칭찬하는 사회, 그 외 수많은 사회적 장치들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건가요?

    회사든 개인이든 모두가 한정된 자원을 본인들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한정된 자원을 본인에게 크게 이득이 되지 않는 쪽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을 할 거라면 그 비난을 하는 사람은 그 한정된 자원을 본인에게 크게 이득이 되지 않아도 이상 또는 신념에 맞는 쪽으로 사용하고 있어야겠죠. (비난을 하려면 최소한의 자격은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글 쓰신 분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과연 글 쓰신 분께서는 그렇게 하고 있으신가 굉장히 궁금합니다. 아마 현재 다니시는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보다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왜 본인은 한정된 자원을 본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걸 해야한다고 불편하게 만들려고 하십니까?

    • aass aass

      존내 불편해 하네 ㅋㅋㅋㅋㅋㅋㅋ 불편해서 혼자 급발진 하는걸 보니 성두님 글 잘 쓰신듯 ㅎ

      • ddd ddd

        급발진 처럼 보이진 않는데..

    • 안녕하세요 pc_nazi님. 먼저 제 글을 읽고 정성스런 피드백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당신이 차별을 하고 있다”는 글의 논지가 아무리 다듬어도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글이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즉 “차별을 하고 있는 당신이 나빠”라는 메시지로 글이 전달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래도 제 역량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이 pc_nazi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pc_nazi님의 질문에 순서대로 답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현재 이 블로그는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장치가 되어 있나요? 만약 그런 게 안 되어 있으면 이 글을 쓰신 본인께서는 차별을 하고 계신 건가요?
      * 네 이 블로그는 시각장애인 및 저시력자분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지원을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워드프레스닷컴의 대부분의 템플릿은 제가 노력을 따로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관련한 대부분의 대응이 되어 있었습니다.워드프레스닷컴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블로그 서비스 플랫폼들은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 있습니다.

      2. 한 서비스가 주 타겟을 특정 그룹에 맞췄다고 다른 그룹을 차별한다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 네 물론 앱을 사용하는 “주요”타겟층은 있습니다. 예컨대 틱톡같은 경우는 10대들이 많이 사용하고 네이버 밴드는 어르신들이 많이 쓰지요. 따라서 틱톡에서 10대들에게 익숙한 디자인언어로 튜토리얼이 생략 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앱의 “주요”타겟을 더 많이 고려하는 것과, “특정 그룹은 우리 앱을 쓰게 하지 않겠다-또는 쓸 수 없어도 상관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내용입니다. 장애인이라고 묶어놓았지만 장애인 안에도 10대와 60대가 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틱톡을 쓰지 말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10대 장애인 입장에서, 친구들은 모두 틱톡을 쓰는데 자신은 쓸 수 없다면, 당연히 차별받는다 느낄 겁니다. 비슷한 예로 청각장애인도 음악을 듣습니다. 뮤지컬도 관람하고, 음악을 만들기도 합니다. “장애인은 내 서비스를 쓰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정말 많은 경우 오해에서 오는 편견입니다.

      3. 외국인이 이 글을 보고 싶은데 그 외국인의 언어로 이 글이 제공되지 않는 건 차별인가요?
      * 좋은 지점을 짚어주셨습니다. 외국인이 제 글을 읽고 싶은데 읽을 수 없다면, 문제는 외국인에게 있을까요, 저에게 있을까요? 또는 외국어를 손쉽게 번역받을 수 없는 환경에 있을까요? 제가 외국어로 글을 제공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 문제가 “한글을 못읽는 외국인”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런 외국인이 나타난다면, 번역기를 쓰거나 번역가를 고용하거나, 또는 그 외국인이 제게 번역을 요청을 해서 글을 읽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각장애인이 글을 읽지 못할 때, 우리는 위와 같은 자연스러운 흐름 대신, “시각장애인이 글을 읽어?”라는 생각(사실은 그런 생각조차 안 하지요)으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차별입니다.

      4. 회사든 개인이든 모두가 한정된 자원을 자신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사용하는데, 누가 여기에 뭐라고 할 수 있나요?
      * 먼저 접근성을 지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봤을 떄 추가적인 노력을 들이는 일인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종국에는 더 간단한 코드베이스, 일반 유저에게도 더 나은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즉, 접근성을 지원하는 일은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이는 일입니다.
      * 또 회사나 개인이 모두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완전한 자유방임주의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많이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회사나 개인은 때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 실제로 제가 마지막에 강조한 의무는, 결코 제가 개인적인 의견으로 pc_nazi님에게 강요드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법에 근거한 의무입니다. 제가 링크도 첨부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개인*법인*공공기관은 장애인이 전자정보와 비전자정보를 이용하고 그에 접근함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차별행위를 하여선 안 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제게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 이런 “선비질”을 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우리의 실정법에 명시되어 있는 우리의 의무를 상기시키고, 그 배경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pc_nazi님께서 제 글을 읽고 많은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 pc_nazi pc_nazi

        길게 답글 단 게 안 올라오네요. 올라오자마자 지운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짧게 요약해서 다시 써봅니다.

        …라고 말은 했지만 곳곳에 원글과 댓글 곳곳에 심겨진 편견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자니 너무 많고 그걸 안 다루자니 빌드업이 안 되네요.

        짧게 요약하면 “서비스 제공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용자가 불편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차별”이라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하고 계신데

        – 서비스 제공하는 사람이 자원을 투자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부터가 없던 가치를 만들어낸 것인데 거기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게 없다고 서비스 제공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 애초에 서비스 제공자는 사용자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도덕적 의무가 없다.
        – 그리고 그 요구를 할 수 있는 권리는 단순히 사용자가 장애인이라고 주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보고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하시는데 오해가 아닙니다.

        성두님 댓글에서조차 급진적 입장에서 보면 차별하는 행동을 하고 계시거든요.

        > 그 문제가 “한글을 못읽는 외국인”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쳐야 할 문제로서의 문제가 외국인에게 있는 건 아니지만 성두님이 염두에 둔 독자층에 그 외국인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에서 글이 못 읽는 상황은 99.99%의 한국인 독자 또는 그 한국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성두님이 아니라 그 외국인이 발단이 된 게 맞습니다. 애초에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상대가 블로그 글을 읽는 99.99…%의 독자가 글을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이라고 전제를 깔았는데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 온 거니까요.

        > 아마 그런 외국인이 나타난다면, 번역기를 쓰거나 번역가를 고용하거나, 또는 그 외국인이 제게 번역을 요청을 해서 글을 읽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요.

        장애인의 경우로 성두님의 이 말을 바꿔쓰면 “아마 그런 장애인이 나타난다면 도움을 줄 사람을 고용하거나 또는 그 장애인이 제게 접근성을 요청을 해서 앱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요.”가 되는데 애초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게 차별이라고 하시는 분 치고는 너무 안일한 대답이 아닌가요?

        근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제삼자가 등판해서 “성두님. 외국인이 이 글을 못 봐도 상관없다고 그들이 불편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차별이라는 거 모르시나요? 외국인이 이 블로그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편견이자 오해입니다.”라고 한다면 성두님이 과연 “아! 차별을 해서 죄송합니다. 바로 번역본 드릴게요.”라고 기꺼이 하시려나요? 또는 외국인이 “내가 이 블로그에 왔는데 글을 못 읽는 상황 자체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다. 성두님은 내게 번역을 제공하라”고 요구한다면 “내가 당연히 외국인에게 번역을 제공할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실까요?

        그리고 글 곳곳에 본인의 편견을 심어놓고 암묵적으로 독자가 동의를 하게 하는 게 많이 보이네요.
        부드러운 말투와 좋아보이는 목표 행동, 그리고 곳곳에 심어둔 편견과 급진적인 입장.
        사실 제가 댓글을 단 이유의 20%만 성두님의 급진적인 차별에 대한 입장이고 80%는 PC주의와 검증되지 않은 편견, 그리고 그걸 독자에게 심는 것 때문입니다.

      • PC_NAZI님, 온라인의 공간에서 짧은 댓글들을 통해 서로의 다른 관점에 공감하고 자신의 의견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오해 2가지만 짚겠습니다.

        1.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제 개인적 급진적 관점이 아니라, “현재” WHO에서 정의하고 있는 장애에 녹아져 있는 개념입니다.
        2. 서비스 제공자는 사용자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제 글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으시건 간에, 우리나라의 법이 그렇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만들든, “잘”만 만들면 접근성 지원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부디 PC_NAZI님께서 만드시는 서비스도 “잘” 만드시길 바랍니다.

      • pc_nazi pc_nazi

        1, 2번 둘 다 틀리셨습니다.
        1. 저는 모델을 문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전 모델을 인용해서 “차별”을 정의하는 게 급진적이라고 한 겁니다. 그리고 WHO에서 정의하면 급진적이지 않게 되는 걸까요?
        2. 말씀하신 링크에 보시면 그게 강제되는 행위자는 공공기관, 교육기관 등으로 특정되어있습니다. 일반 사업자가 거기에 해당한다면 수많은 사업자들이 한국을 떠나게 될 거라는 건 불보듯 뻔한 사실이고요.

    • Resistance Resistance

      자기가 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으니 메신저를 차별주의자로 만들고 있네요. 화두를 던지는 글에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 당신이야말로 차별을 하고 있다.’

      얼마나 편한 대응방식입니까? 부디 밖에 나가서도 피시 나찌 같은 웃기는 이름을 당당하게 휘두르는 태도를 평생토록 유지하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 kiding kiding

        실제 소련(과 트럼프와 중국)이 프로파간다에 사용한 방식으로 Whataboutism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의식 얘기를 했더니 너는 제대로 하고 있냐? 장애인 말고 외국인은 어떠냐? 하면서 논지를 흐리는 논리 오류라고 합니다. 저분만 보면 닉값을 잘하고 있는 셈이지요.

        https://en.wikipedia.org/wiki/Whataboutism

      • pc_nazi pc_nazi

        능지 딸리는 댓글들이 보이네요.

        Whataboutism은 상대의 다른 잘못을 언급하는 거고 (Gulag 문제 언급하니까 노예문제 언급.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상황) 이건 성두님이 “소수가 불편을 느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유를 막론하고 차별이다”를 그대로 다른 쪽에 적용하는 건데 둘을 구분 못하시나보네요.

        메신저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메신저 논시를 메신저에게 적용했더니 메신저조차 지키지 못할 말을 하는 걸 지적하는 건데요.

        반박을 하려면 장애인과 외국인이 불편을 느끼는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다른 점이나 사용자가 제공자에게 의무를 지을 근거가 없다는 점이나 말씀해보시던지요. 보통 스스로 되돌아 볼 메타 인지 능력이 부족거나 상대의 상황이나 의도를 파악할 줄 모르고 드러난 현상만으로 상대를 평가할수록 PC주의자더라고요. 물론 본인의 잘못을 덮으려고 하거나 남을 비방하고 싶은 더러운 욕구에 그럴 듯한 명분을 갖추기 위하는 경우도 많고요. 능지의 부족인지 가식적인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어느 쪽이든 주변 사람들은 고생할 거예요.

    • PC_NAZI님께서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자유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유는 아닙니다. UN인권 헌장에서, 우리나라 헌법에서, 장애인 차별 금지법에서, 그 외 다양한 실정법에서 차별은 자유의 영역이 아니라고 명확히 적시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다른 분들께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하시는 이상 더 이상의 댓글은 방치할 수 없다는 점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c_nazi pc_nazi

        두 분 지능 운운한 건 죄송합니다. PC주의자에 대해서는 모욕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고차원의 사고가 안 되는 경우 의도를 파악 못하는 건 맞거든요. 댓글 지우기가 안 되는데 모욕 댓글 지우시면 다시 제대로 반박 글 달아보겠습니다.

      • pc_nazi pc_nazi

        논쟁을 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모욕적인 발언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사과를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만 제가 처음에도 말했듯, 이미 각자가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인터넷 상의 짧은 댓글 교환으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변화되기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스스로는 고차원의 생각을 할 수 있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마음가짐인 경우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이상은 답글을 달아주실 필요 없습니다. PC_NAZI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면 본인의 블로그에 쓰시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받아보세요.

      그저 마지막으로, ‘장애인 차별 금지법’은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에 대해서만 제제하고 있지 않다는 점, 상기시켜드립니다. (사실 저는 쓰여있는 글을 가져다 줘도 못 읽는 분이 어떤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신다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인권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에요. 논리만으로는 사람의 인권은 어디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답니다.)

      개인ㆍ법인ㆍ공공기관(이하 이 조에서 “개인 등”이라 한다)은 장애인이 전자정보와 비전자정보를 이용하고 그에 접근함에 있어서 장애를 이유로 제4조제1항제1호 및 제2호에서 금지한 차별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부디 이 법을 위반해 법원이나 인권위의 제제를 받지 않으시길 빕니다.
      이 이후의 댓글은 모두 비승인 처리하겠습니다.

      • pc_nazi pc_nazi

        좀 더 자세히 봤는데 성두님 말씀이 맞네요.
        앞으로는 좀 더 철저히 찾아보고 논박하도록 하겠습니다.

    • andy andy

      댓글을 쓴 분은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모르시나요? 보편적 설계에 대한 중요성, 필요성을 말씀하시고, 더 나아가 보편적 디자인이 오히려 한정된 자원을 적게 쓰고도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셨는데요.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이 짧아서 납득이 어려우셨다면, “선량한 차별주의자(제목으로 기분나빠 마시길)” 라는 책으로 긴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 지나가다 지나가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청각장애인도 넓은 스펙트럼으로 존재하고, 수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한 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구별하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댓글 달았습니다.
    참고하실수 있는 문서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femiwiki.com/w/%EB%86%8D%EC%9D%B8

    •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부분도 많이 고민했던 부분인데, 글의 논지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생략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말씀주신 것 처럼 청각장애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뿐 아니라, 시각장애에도 앞을 아예 볼 수 없는 전맹부터 특수한 파장을 볼 수 없는 특수시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스펙트럼을 인지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을 모두 “장애인”으로 묶는 것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폭력적인 일이지요.
      언급주신 부분 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글의 논지를 간략히 하기 위해 이런 다양함이 있다는 부분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글을 통해 청각장애인에 대한 오해가 (청각장애인은 모두 수화를 한다) 더 널리 퍼질 수도 있겠네요. 이 부분은 고쳐서 글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3. qqqq qqqq

    청각 장애인을 위해 비장애인 모두가 수어를 배워햐 하나요?

    • 그렇지 않습니다.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 그 원인을 청각장애인의 신체로 돌리시지만 않으면 됩니다.

    • 청각장애인도 청각장애인도

      청각장애인도 문자를 사용합니다.
      문자를, 메신저를, 필담을 이용해 대화할 수 있습니다.

    • 사실 필담까지 갈 것도 없이 생각보다 많은 청각장애인들은 구어를 할 수 있답니다. 뒤에서 말하는 것을 못들을 뿐이지요.

    • 쁍뺩 쁍뺩

      청각장애인을 “우리”의 범주에서 생각하는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청각장애인이 모두 수어를 하는것도 아니고 청각장애인이 모두 소리를 전혀 못듣지도 않아요

  4. 신민기 신민기

    좋은 insight 주셔서 감사합니다!

  5. chmin chmin

    ===
    우리가 그들을 “우리와 상관 없는 사람, 챙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차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남수단에는 100여만 명의 딩카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딩카어라는 소수어를 사용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웹사이트들은 딩카족들이 접근할 수 없게끔되어있고, 이것을 심각한 차별이라고 합시다.

    자, 그러면 이런 상황을 방치해온 개발자들은 딩카족을 차별하고 있기때문일까요?

    글 쓰신 분 블로그에 딩카어 번역본이 없는건 딩카족을 차별하기때문일까요?

    저는 위 글을 읽고 PC주의자들이 저지르는 너무나 흔한 오류를 다시 목격했습니다

    사회 현상을 목격하고 문제의식을 느낄때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너무나도 쉽게 당위를 내세우는 고질적인 행태, 누군가가 불편을 겪을때 그 원인은 “차별 의식때문이다” 너무나도 편리한 진단.

    모든 문제는 구조적 한계, 기술적 한계, 경제적 한계에서 비롯되는게 태반입니다

    어떤 앱이 장애인이 사용하기 불편한건 만든 사람의 차별의식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나이브한 진단을 내림으로써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집니다

    개발자 개개인의 차별 의식이 문제다, 이래버리면 각자가 차별 의식을 고쳐라, 이걸로 끝입니다
    네, 각자 알아서 의식을 개조하면 장애인 차별 문제는 그냥 해결되겠네요
    예산을 더 추가할 필요도 없고 기술 개발에 투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의식을 고치세요, 그러면 됩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함, 당위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논의 자체를 막아버리는 식으로 기능합니다

  6. 신동주 신동주

    글 잘 읽고 갑니다 🙂 더 많은 서비스들이 접근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동의합니다.

    그런데 글쓴이분께서는 iOS, Android, Web등의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API들이 접근성을 고려해서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API들을 의도대로만 사용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더 좋고 간결한 코드를 달성하고, 심지어 일반 사용자에게도 저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API들만으로는 요구사항을 구현하기 어려워 custom하게 제공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죠.

    특히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하게도– 기존 플랫폼이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런 경우 접근성 문제는 비용(시간)과 직결되죠…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접근성을 챙깁시다!’ 라는 주장보다는 ‘접근성을 확보하는 게 어려울지라도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남기고 갑니다. (물론 그러면 글의 어그로(?)성은 떨어지겠지만요…)

    • 동주님 좋은 피드백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적절한 지점을 짚여주셨어요! 사실 접근성 지원이 쉬운 부분도 있지만 어려운 부분도 있고, 그런 순간에 “접근성 지원은 쉬워서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뭐야 쉽다더니 생각보다 쉽지 않네 그냥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도 쉽죠.

      그래서 여태까지는 “접근성 지원, 개발자의 빠른 성장을 도와줍니다 https://sungdoo.dev/retrospective-or-psa/how-accessibility-nudges-you-to-be-better-developer/” 와 같은 글에서 “접근성 지원이 쉽다”는 점을 좀 더 강조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접근성 지원이 조금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접근성 지원이 우리의 의무임을 잊지 말자는 취지를 좀 더 강조해서 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개발 공수 차원”에서도 사실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글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하네요.

      다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접근성 지원이 개발의 효율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요구사항을 기본적인 API들만으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제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 하긴 어렵겠습니다만) 사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대부분의 View들을 커스텀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기본 API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지원하는지 충분히 살펴볼 생각을 하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기본 API들에서 접근성 지원등을 잘 해준다는 것을 알게되고 관련 문서를 더 많이 파본 결과 제가 아주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UIResponder, UIView, UIControl등의 기본 API들이 얼마나 확장성 있게 디자인 되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는지 저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이 때 제가 기본을 많이 놓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작성한 글이 “공식문서만으로 iOS 개발 배우기 https://sungdoo.dev/programming/start-ios-development-with-offical-docs/ ” 라는 글이었지요. 학원이나 유튜브 등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하기 위해 기초를 무시한 채 짜여진 교육과정을 들었던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 분명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반드시 Custom하게 만들어야 하는 View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보다 많은 개발자들이 기본 API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성 지원이라는 주제가 이 기본 API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실제로 제가 몸담고 있는 뱅크샐러드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View를 Custom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접근성 지원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다이나믹타입을 지원하는 것은 꼭 저시력자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컨텐츠의 길이에 따라 셀의 높이가 달라지도록 하는 Self-SizingCell을 만드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VoiceOver지원도 마찬가지로,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어차피 어떤 셀이 아무리 복잡하게 디자인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셀은 어떤 정보를 보여줍니다. 3개의 Label과 1개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cell이 있다면, 그 cell의 layoutSubView에서 `self.accessibilityLable = firstLabel.text + “, ” secondLabel.text + “, ” + “thirdLabel.text” + “:” + imageAltText` 와 같은 식으로 그 UI안에서 표현하고 있던 정보들을 모두 accessibilityLabel 또는 accessibilityValue에 넣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분명 접근성 지원에도 어려운 순간은 옵니다. 그럴 때 저희 조직의 유행어인 “순리”를 외치며 그 어려움을 넘어서고 있지요. 그리고 그렇게 어려움을 넘어설 때마다 한 차원씩 더 성장했던 것 같아요. 동주님의 의견처럼, 그런 어려운 순간에도 접근성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주는 글을 조만간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피드백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7. Chichi Chichi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발자는 아니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곱씹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8. kiding kiding

    개발 과정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장애인을 샤오미 폰만도 못하게 취급하고 있으니 차별하지 말아달라 문제의식을 가져달라 그래야 변화가 있다…는 호소를 굳이 논거를 들어서 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한없이 끔찍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요?

  9. 쁍뺩 쁍뺩

    우리는 늘 특수한 사례들에 대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약간 머리를 때리는 느낌이네요. 굳이 리프레이즈 하자면 사실은 특수한 요구에 대처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일반적인 일이며, 우리가 장애인의 사례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자원의 부족 보다는 장애인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데서 기인하는구나 싶어요
    .

  10. 쁍뺩 쁍뺩

    자, 그러면 이런 상황을 방치해온 개발자들은 딩카족을 차별하고 있기때문일까요?

    글 쓰신 분 블로그에 딩카어 번역본이 없는건 딩카족을 차별하기때문일까요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 분들이 많은데 결국 그분들 머리 속에서 장애인이란 외국인처럼 타자일 뿐이라는거네요.

    근데 현재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모종의 이유로 딩카어 사용자가 한국에 어느정도 있다면 딩카어 번역을 제공하지 않는건 차별이 되기도 하지요.
    공용어가 여럿인 남아공 같은 나라에서는 실제로 비슷한 문제가 있구요.

  11. 강

    정말 좋은 글이네요.
    웬만하면 블로그에 댓글을 달지 않는데, 정말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성두님께 꼭 전하고 싶어서 댓글 남깁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라는 진단을 내리는 건 쉬운 진단이 아닙니다. 라는 진단을 내리는 게 쉬운 진단이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후자가 쉬운 진단 아닌가요?

    어떠한 차별상황에 있어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결국 그 차별은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내게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뉴욕에 사는 고소득자 백인 남성이 아니니까요.

    • 강

      두번째 문단 내용이 잘려서 다시 올립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차별 때문이다’ 라는 진단을 내리는 건 쉬운 진단이 아닙니다. ‘소수자이거나 ‘일반’에서 벗어난 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라는 진단을 내리는 게 쉬운 진단이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후자가 쉬운 진단 아닌가요?

  12. vm vm

    상당히 도발적인 글이네요.

    특히 ‘차별은 무지에서 온다’같은 문장은 PC주의자들이 흔히 하는 실언인 ‘uneducated’와 같은 맥락으로 읽히네요.

    ‘니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데, 귀구녕 열어라 가르침 들어간다’식의 주장을 하면
    ‘저의 무지를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나이먹고 그렇게 훈계하면 돌아오는건 꼰대라는 소리밖에 못듣죠.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에게서야, 명문이네 일침이네 사이다네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반쯤 읽다 창을 닫거나…지금 제 리플같은 쓸데 없는 어그로가 될뿐이죠.

    무슨 주장을 하시는지는 알겠지만…전혀 공감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가 ‘uneducated’한 무지렁이라 그렇겠지요.

    차별이나 인류애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철저히 수익을 계산해 볼 때 해볼만한 투자라는 뉘앙스였다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을 듯 합니다. 도덕은 돈을 벌어주지 않으니까요.

    도덕론은…거리에서 외치는 예수믿으세요…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안녕하세요 vm님
      정성어린 피드백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라도 제 글이 vm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이 차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무리 순화시켜서 말해도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잘 풀어내려 했지만 제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차별이 무지에서 온다고 제가 말했지요? vm님께서 지적하셨듯, 이 “무지”라는 단어에 많은 사람들이 비아냥과 경멸을 담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모두 무지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공부를 해서 박사 학위를 따도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 비하면 무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얻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많이 배울 수록 더 겸손해지고, 더 지식이 깊어질 수록 탐구하고 싶은 것도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한 편 vm님의 말처럼, 이른바 “PC주의자”라는 사람들 중 일부가, 상대방의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을 “조리돌림”하며 그것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놀리는 것을 일종의 스포츠처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vm님을 비롯, 제 글에 거부감을 가지시는 많은 분들이 그런 “조리돌림”의 피해자였거나 그 폐해에 가슴아파 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을 없애자고 하면서 상대방의 무지를 놀리고 자신의 유식함을 과시하는 비열한 문화는 하루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부터가, 제가 글에서 묘사했던 “서울에 사는 2~30대 군필 남성 대기업(?) 비장애인 헤테로 직장인” 입니다. 어떤 차원에서 봐도 소수자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지요. 저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저지르고 있는 차별을 인지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옳다는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결과 남들로부터 “차별을 하고 있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매우 억울한 일이지요. 한술 더 떠 그 억울함을 토로할라치면 “배부른 소리 한다”며 더 많은 조롱을 받기도 일쑤입니다. 딱히 이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은 매한가지인데도 “기득권층”이라는 손가락질과 조롱을 견디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요. 이런 조롱의 문화가 인터넷 상에 팽배하니 저와 비슷한 배경의 많은 분들이 이른바 “PC주의자”들에 대해 갖는 거부감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PC주의자들이 잘못된 형태로 사람들을 “가르치려”든다고 해서, 또는 조롱한다고 해서 결코 그들의 주장 자체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비록 가진 것이 없어보여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아주 많은 것들을 거저 얻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하루에 13시간씩 공부에만 집중 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고, 직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여성 동료들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결혼을 통해 경력이 단절될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조금 억울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거저 얻은 것들을, 그래서 가지고 있다고 느껴보지조차 않았던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누려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덕은 돈을 벌어주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해 제 의견을 간략히 적겠습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다보면, 마치 역사가 오로지 집단의 이해득실에 의해서만 흘러온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역사는 서로를 아끼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현실의 부도덕들을 개선하면서 만들어진 역사랍니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이, 백인 남성들의 모멸을 견디고 처음으로 대학의 문턱을 넘었던 흑인 여성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이, 독재에 항거하며 스러져갔던 영웅들이, 옳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 조금씩 가진 것들을 포기하고 손해를 보며 아픔을 견디며 만들어온 역사입니다.

      도덕은 힘이 있습니다. 도덕은 역사를 아주 빠르게 바꿨고 바꾸고 있습니다. 흑인이 백인과 같은 버스에 타지 못했던 것은 60년 전입니다. 90년대에는 30대가 넘은 여자를 노쳐녀라고 하고, 운전이라도 할라치면 집에가서 애나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본문에서 소개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조차 21세기에 와서야 만들어졌습니다. 세상은 이해득실에 의해 많이 돌아가지만, 또 온전히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vm님께서 제 짧은 글로 생각을 바꾸실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PC주의자들에게서 얻은 상처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제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조금은 더 따듯한 시선으로 우리 주변을 바라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hortchata hortchata

      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본인과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 장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니가 가진 장애 따위 돈을 벌어주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시나요.

    • ㅁㅁ ㅁㅁ

      “특히 ‘차별은 무지에서 온다’같은 문장은 PC주의자들이 흔히 하는 실언인 ‘uneducated’와 같은 맥락으로 읽히네요.”
      차별이 어떤 능동적인 혐오에서 오는게 아니라, 단순히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13. 좋은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보다, 댓글을 통해 나온 여러 다른 의견들과 차분히 짚어주시는 것을 보며,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4. 제목부터 서비스 타겟을 잡는것과 접근성을 지키는것이 뭉뚱그려진 부분이 아쉽네요.
    접근성과 타겟은 비슷해보이면서 다른 문제일텐데, 이를 비교해서 동일선에 놓은 부분이 이 글의 논지를 흐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글의 핵심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사실 평소에 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인점이 스스로 불편하고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 서비스 타겟을 잡는것과 접근성을 지키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은 많은 경우 오해에서 비롯된 차별일 수 있답니다. 예컨대 청각장애인들도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시각장애인들도 넷플릭스로 영화를 봅니다. 물론 정말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시각장애인은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쏘카를 탈 순 없겠죠.하지만 팔다리가 없으신 분들 중에서도 운전을 하시는 분들이 있답니다.). 색맹/색약인 만화가들도 많지요. 대부분의 경우 “XX장애인은 OO는 못할거야”라는 것은 선입견인 경우가 많습니다.

      • 제가 생각한 서비스 타겟은 그게 아닌데, 예를들면 서울사람을 위해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은곳에서 가게를 하는것은 타겟을 명확히 한것이고, 시각보조장치나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는것은 접근성을 해치는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글에서 서술하셨든 어떤집단을 떠올릴때 장애인을 제외하고 생각하는것이 차별인것이지, 그 집단을 위한 서비스를 만드는게 차별은 아니라는거죠.

  15. whoIam? whoIam?

    기능이 부족한 건 언제나 돈과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by romanlez parzieale

  16. pc pc

    기능이 부족한 건 언제나 돈과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by romanlez parzieale
    +1

    횡단보도를 만드는 일이 당신의 직업입니다.
    2차선밖에 안되고 차량흐름도 너무 많은곳이라 파란불 횡단신호를 최대한 늘려서 2분으로 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육교를 만들 수 있는 예산을 받아낼 권한도 없고, 그렇다고 2분이상으로 하면 도로가 정체되어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생각치못하게 길을 건너는데에 5분이 필요한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차별을 한 것인가요?
    할수없이 당신은 할머니를 위해서 위험을 무릎쓰고 신호를 5분으로 늘렸습니다. 하지만 길을 건너는데에 6분이 필요한 할아버지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17. 텍무새 텍무새

    이렇게 꼼꼼하고 좋은 글을 남겨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주로 접근성을 마련해달라고 요구를 하고 다니는 편인데 실무자분이 이렇게 글을 써주시니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든 글을 까내릴 생각뿐인 무례한 사람들에게도 하나씩 설명해주시는 것도 정말 대단하세요. 함께하는 세상을 위해 지금처럼 함께해요.

  18. mountain mountain

    댓글을 보니 제가 가진 편견이 더 심화되는 기분이라 썩 유쾌하지 않네요.. 우리는 개발자지 코더가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웹개발자이기 때문에 웹이 발전하는 만큼, 접근성이 더 중요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앱 또한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접근성을 준수하는게 좋을것같다 라고 말했던 지난 5년 동안 항상 듣던 말이 “그렇게 까지 할 인력과 시간이 없다.”, “글쎄 그게 중요할까?” 등의 말이었기 때문에 매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제 경험에서는 스타일을 크로스브라우징 하는 부분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접근성을 준수하는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브라우저가 가진 기본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보고 사용할 수 있게 크로스브라우징을 한다고 하는데, 접근성이 준수되지 않은 브라우저는 접근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크로스브라우징 되지 않은 IE8 브라우저를 사용하는것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열악합니다.

    또 다른 예로 애플은 접근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입니다. 앱 개발자를 위해 ‘개발자를 위한 손쉬운 사용 기능’을 제공하고, 해당 기능을 고려해 개발하기를 독려합니다. 시각장애인 69%가 iOS 플랫폼을 선호한다고도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이스오버 기능 때문입니다. 보이스오버 기능은 이미지 묘사까지 해줍니다. 그럼 이 이미지를 묘사하는 텍스트는 누가 입력하는걸까요? 만약 배너에 채용공고 포스터를 넣었다면 그것조차 다 읽어줘야하나? 접근성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배너 속 글씨도 다 텍스트로 입력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수가 많이 든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더 발전 할 온라인 시장만큼 더 많은 사용자, 더 다양한 타겟층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기본적인 것을 준수해야하고 그 안에 접근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드는 플랫폼은 타겟층이 아니라서 준수할필요없어 라고 하면 할말이 없습니다만 우리는 개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공수가 많이 들어도 준수해야 한다는 편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이 글을 공유하며 접근성이 그렇게 공수를 많이 들일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한게 아니라는걸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프로젝트들을 접근성 준수를 위해 리팩토링 할 수 없지만, 버전 업데이트나 버그 수정 등 코드를 개선할 때 조금씩 준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규 프로젝트들도 완벽한 접근성을 준수하지 못하더라도 준수하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의도가 공감되서 술술 읽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알 수 있는 댓글까지..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19. minseolee minseolee

    차별 –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
    차별이라기보다 무심했다는 표현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

    나는 장애인분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겠어!(=차별) 가 아니라 장애인분들의 입장을 미처 생각 못했어(=무심) 이 맞지 않나 싶네요

    추가적으로 개발자가 인지하고 있더라도 리소스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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