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원수를 찾기 위한 단서를 좇다, “혼노지 학원”이라는 곳에 도달한 전학생 “마토이 류코”는,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그 학교에서 가장 높은 인물인 학생회장 “키류인 사츠키”에게 접근한다. 키류인 사츠키는 학교의 “사천왕”을 모두 이기면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마토이 류코는 사천왕을 하나 하나 격파하며 키류인 사츠키에게,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에 조금씩 접근한다... 는 다소 진부한 스토리라인으로 극은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학교, 사천왕”과 같은 철저하게 진부한 클리쉐들을 킬라킬은 그저 답습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도 뻔한 전개”가 예상되는 부분에선, 과감하게 중간과정을 생략해 전개 속도를 높이거나, 그 뻔한 전개의 마지막에 생각하지 못한 반전을 마련해두는 등, 지난 수십년간 일본 만화계에 누적된 각종 클리쉐들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그로 인한 빠른 전개와 반전들은, 진부하거나 늘어지는 전개를 보여주는 각종 애니들에서 피로감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까스활명수같은 청량함을 선사한다. “이 에피소드로 1~2화는 쉽게 울궈먹겠군”이란 생각이 든다 싶으면, 바로 다음 1분 안에 그 전개가 끝나있는 통쾌함은, 만화의 본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굳이 구구 절절히 이 사람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지 않더라도,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단 몇 개의 상징들을 슬쩍 보여주는 것 만으로 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도록, 또는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만화이고, 또 시(詩)이지 않았나!
또 하나 탁월한 부분은 완급조절이다. 기본적으로 “열혈” 주인공들이 잔뜩 등장하는만큼, 크고 과격하게 소리지르는 장면들이 대단히 많이, 또 종종 오래 나온다. 이런 “하이텐션”장면들이 많이 나오면, 관객은 금방 피로해지기도 할 뿐더러, 정말로 중요한 클라이막스에서의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킬라킬에서는 그런 하이텐션 장면들이 엄청 많이, 또 오래 나오는데도 이런 문제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아마 가장 큰 이유로는, 결정적인, 그리고 탁월한 순간에 “만칸쇼쿠 마코”와 같은 캐릭터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이런 하이텐션을 적절히 끊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열혈 하이텐션”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은 “완급 조절된” 작품을 감상하게 되고, 그 결과 주연들의 “열혈 하이텐션”이 더욱 돋보이게 되어 그 만큼 캐릭터들의 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킬라킬이 다른 어떤 작품에 비해서도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여자 주인공들끼리의 박력 넘치는 전투” 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소년 열혈 만화” 같은 표현은 꽤 자주 듣는 표현이지만, “소녀 열혈 만화”는 내게 사실상 킬라킬이 처음이었고, 안타깝게도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될만한 작품을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한 장면에서도 이 부분을 이상하게 여기는 극중인물도 없고, 사실 관객조차 이런 부분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고 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이 여성과 성장하고 갈등하는 만화. 다양한 여성들이 열정과 기백과 야망과 박력과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만화. 주인공과, 주인공의 절친과, 라이벌과, 빌런과, 빌런의 부하들이 모두 여성인 그런 만화를 작금의 일본 애니메이션 토양에서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다만 극 초반부에, 주인공이 “변신”을 하면서 입게 되는 코스튬이, 거의 전라를 노출하는 수준의 파렴치한 디자인이어서 이 부분에서 거부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부분이 이 작품의 페미니즘적 성격을 한 층 더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킬라킬에서 주인공들이 착용하는 전투복(신의)는 분명 가슴과 복부, 엉덩이 대부분을 노출하는 파렴치한 디자인이다. 그리고 이런 디자인을 관음적인 구도로 보여주는 장면들도 분명 없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전투복을 처음 보여주는 장면을 제외하고선, 이 전투복이 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거의 없었다. 이 부분이 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왜 이렇게 야한 옷을 입고 싸우는데 야하지 않을까?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나는 아래 트윗에서 얻을 수 있었다.
마네의 올랭피아. 관음적 시선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그녀의 태도는 미술관에서 관음적 욕구를 채우려던 많은 남성들을 당황시켰다. 관련 글. “마네 올랭피아를 비난한 귀족들, 천박하고 치졸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어도, 정면을 당당히 응시하는 주인공에게서는 그 어떤 에로틱함도 찾아볼 수 없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천하에 유방을 드러낸들 부끄럽지 않다는 키류인 사츠키. 이 위풍당당한 모습 앞에서 관음적 여유를 즐길 여유는 없다.
현재의 디자인이 전투복의 성능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한 형태라는 점을 이해하는 주인공들에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 변신의 최종장면에서는 관객의 눈을 정면으로 당당하게 쳐다본다. 그 당당한 눈 아래에, 적당히 묘사된 둥근 가슴은, 어느 순간 아무래도 상관 없는 사소한 디테일이 된다. 킬라킬에서의 노출은, 사내들의 눈요기를 위한 노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주인공들의 성장을 보여주는 도구로 소모된다. 킬라킬이 비튼 수많은 일본 만화 클리쉐 중에서, 가장 통쾌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킬라킬과 같은 애니를 더 많이 보고 싶다. 킬라킬과 같은 “소녀 열혈 만화”가,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박력있는 여자들의 싸움을 보기 위해, 다음에도 킬라킬을 정주행 할 필요는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