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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그노런스

Created
2018/07/28
Tags
Book
Review
Science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1. 약을 쓰지 말고 아이를 키우자고 주장하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휩쓸었다. 아직도 각종 매체에선 남성은 이성적이며 여성은 감성적이라고 전제하고 연애조언을 한다. 과학자들이 '여러분!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라고 외치는 소리는 널리 퍼지지 않는다.
과학자들의 외침이 널리 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외침에 대한 유사과학자들의 반격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자들에게 말한다. '어떻게 너희들의 주장만 참이고 우리들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지? 우리들의 주장도 우리 나름의 실험의 결과물이라고! 우리들의 실험결과가 너희들의 주장과 배치된다고 해서 우리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과학자 엘리트집단의 횡포야!'
유사과학자들의 반격은 너무나 타당해 보일 뿐만 아니라 숭고해 보이기 까지 하다. 기존의 권위와 맞서 싸워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여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그렇게 추구하던 모습 아니었던가? 여기서 헷갈림이 발생한다. 만약 어떤 주장이 유사과학인지 아닌지가 그 주장의 정당성 여부에 달렸다면, 그 정당성을 누가 감히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이그노런스』의 저자는 이러한 혼란이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많은 이들이 과학을 '자연의 신비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활동'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비유라는 것이다. 수수께끼의 경우에는 문제의 출제자가 존재하며, 따라서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해답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문제를 낸 주체는 존재하는지에 대한 보장 자체가 전혀 없다. 저자가 자주 인용하는 다음 격언은 이러한 과학의 본질과 과학자들의 어려움을 잘 표현해 준다.
캄캄한 방안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특히 그곳에 있지도 않은 고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이그노런스 4p
사태가 이러면, 새로운 지식의 추가는 그 자체로는 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아무리 우리가 "이게 정답이죠!" 라고 외쳐봤자 "응! 그게 정답이야!" 라고 대답해줄 출제자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지식이 쌓이더라도 그것들이 자연의 진상을 묘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과학은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진짜 과학자들의 목적은 새로운 지식의 추가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더 질높은 무지다. 예컨대 현대의 물리학은 뉴턴 이래로 수많은 발견을 거듭해왔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우주에 대해 모른다. 예를 들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중력파로 끈이론과 다차원 우주를 검증할 수 있을까?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어떻게 통합될 수 있을까?
양자적 요동과 마이크로배경복사의 편광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은 불과 백여년 전만 해도 최고의 석학들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다.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지식이라는 존재보다는, 이 괴상망측하고 정교한 질문들의 목록이야 말로 과학자들이 일궈낸 의미있는 업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진리에 가닿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제대로된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가닿을 수 있는 첫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위급한 수술을 앞둔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에게 평생의 동반자 앨리스 B. 토클라스Alice B. Toklas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답이 뭐래?" 스타인은 이 말에 “질문이 뭔데?" 하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몇 가지 버전으로 전해지는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질문이 대답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질문은 대답보다 더 거대하다. 좋은 질문 하나가 여러 층위의 대답들을 끌어 낼 수 있고, 수십 년간 해결책을 찾도록 자극할 수 있고, 완전히 새로운 탐구 분야를 만들고, 철옹성 같은 사고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대답은 과정을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그노런스 18p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과학과 유사과학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새롭고 의미있는 질문을 생산하는지의 여부다. ‘물은 답을 알고있다’는 주장을 보자. 물이 답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대체 더 이상 무슨 질문을 한단 말인가? 약을 쓰지 말고 아이를 키우자는 주장을 보자. 인류가 여태까지 살아왔던 대로만 살아간다면 어떻게 새로운 질문이 나올 수 있겠는가?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부는 ‘질 높은 무지야말로 과학의 진정한 목적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짧은 에세이의 형식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소개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저자의 말처럼 “ '아하 그렇군’ 하는 명료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몇 차례 반복해서 듣거나 딱 들어맞는 방식으로 들어야” 한다. 많은 이들에게 과학의 본질이 정반대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느정도 필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후반부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있는 과학자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무지를 다루는지에 대한 사례의 모음이다. 사례들은 과학실험이 "정해진 절차에 의해 엄격히" 진행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파격적으로 깨어버린다. 자연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조차, 그리고 우리가 질문을 묻기 위한 적절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해진 절차에 의해 엄격히" 실험을 한다는 것이 생각해보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지 독자는 곱씹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때론 무모해 보이고, 때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방법으로 과학을 하는데, 그야말로 “캄캄한 방에서 고양이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비유가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지 독자들은 금새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는 몇 백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책에서 탁월하게 소개하듯, 그것은 진짜 신나는 일이다. 밤하늘은 그것이 신비를 품고 있을 때 훨씬 아름답게 빛난다. 그리고 막연한 신비보다는 구체적이고 괴상망측한 신비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이그노런스』와 함께 그 신비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