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결코 라틴어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저자에게 라틴어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세상을 탐구하는, 그리고 그 탐구의 동력인 호기심을 자극 할 수 있는 탁월한 도구.
책은 “지적인 허영”에서 출발한다. 제 1장은 “좀 있어 보이고 싶은 욕구”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격려다. 공부의 동기가 허영이면 어떠한가? 끝내 공부를 계속해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내기만 한다면, 그 출발이 아무리 유치한들 어떠한가라고 책은 말한다.만약 단순히 그런 개인의 의견을 나열하기만 했다면 굉장히 재미 없는 글이었겠지만, 책은 위의 뻔한 주장을 라틴어의 문법과 라틴 문화권의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독자의 흥미를 끈다. 키케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들조차 얼마나 라틴어를 어려워 했는지, 또 현재의 유럽 학생들도 얼마나 라틴어를 어려워하는지를 여러 재미있는 사례들을 활용해 설명한다. 그리고 지적인 허영이 이러한 어려운 여정을 떠나는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불꽃이 될 수 있다면, 그러한 허영을 나쁘다고 말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지적인 허영으로 배움의 시동을 걸 수는 있어도, 깊이 있는 배움을 지속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 책의 가치는, 지적 허영을 조장하는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허영이 호기심으로, 호기심이 탐구심으로, 탐구심이 열정으로 바뀔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데 있다.
책의 두 번째 꼭지의 제목은 Prima schola alba est이다. 첫 수업은 휴강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언제나 대학교 강의의 첫 수업에서는 저 말을 한다고 한다. 왜 첫 수업은 휴강이라는 것일까? 책은, 아마도 저자가 첫 수업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을 위 문장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 준다. 그런데 부연설명에는 계속해서 부연설명이 붙어서, 라틴어의 간단한 문법은 물론, 로마시대와 중세시대 다양한 학교들의 학제와 연원들을 비롯 여러 재미있는 배경지식들을 한참을 훑고 나서야, 이 문장의 함의가 설명되기 시작한다.결론적으로 위 문장의 함의는, 뜻하지 않게 얻은 잉여시간을 봄날의 아지랑이를 관찰하는데 쓰라는 것이다. 갑자기 웬 뜬금없는 아지랑이? 이 의문에 대한 책의 대답이 굉장히 인상깊다. 아지랑이는 라틴어로 nebula라고 하는데, 그 뜻은 ‘보잘 것 없는 것, 또는 그런 마음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책은 여기서 다시 nebula의 인도유럽어,네팔어, 그리스어의 어원을 한참을 설명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자, 이제 이 봄날의 아지랑이를 보러 운동장으로 나가십시오.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 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 것 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이후에도 우리가 아지랑이처럼 지나칠 만한 삶의 작은 장면들에 숨은 기나긴 역사와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시범을 보여준다. 이 시범들의 대부분은 저자 본인이 공부를 하거나 가르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사실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이라는 포맷은, 자칫 젊은 세대에 대한 늙은이들의 영양가 없는 푸념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책은 젊은이들에게 “나 처럼 하면 돼” 식의 무책임한 조언을 일절 삼가고, 언제나 글의 끝을 질문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이러이러 한 것들을 발견했는데, 너는 비슷한 경험이 없었니? 그랬다면 너는 그 때 어떤 것들을 발견했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독자의 입장에 따라 아주 많은 것들을 얻어 갈 수 있는 책이다. 그저 티타임 때 대화 소재로 삼을만한 재미있는 유럽 문화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는 사람도, 진지하게 학문의 길을 고민하는 대학생도, 또는 그저 삶에 지쳐 모종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도 각자 원하는 것을 얻어 갈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