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런 대선이 없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뽑을 사람이 없다. 주요 대선 후보 모두가 한 번씩은, 아니, 사실은 여러 번, 대단히 몰상식한 발언을 했거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사람들 개인의 문제일까? 대선후보 쯤 되면, 대부분의 사회 의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의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한 개인에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어떤 누구라도 대선 후보의 자리에 가게 되면,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몰상식한” 발언 및 의견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모든 분야에 상식을 가지는 것은 현실 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 같다. 100명 규모의 촌락을 이끌면서, 대부분의 문제에 지혜로운 식견을 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과 훈련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10만명 규모의 도시에서는 좀 더 어렵지만 그래도 불가능은 아니다. 하지만 수천만명의 인구, 더 다양해지는 계급, 노동조건, 소수자성, 과학의 가파른 발전과 그에 따른 기존 상식의 파괴, 정보통신의 가파른 발전과 그에 따른 문화의 변화, 기후의 급속한 변화와 그에 따른 인구와 건축의 변화 등등을 따라가는 것이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한 대선후보는 “대통령은 각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라고 했지만, “누가 전문가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충분치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식견을 각 분야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그것은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고, 앞으로 더 불가능해질 것 같다. 따라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선후보는 이번 대선에서는 물론이고 앞으로는 더더욱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진보를 이루더라도, 많은 분야에서 퇴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기하급수적인 인구의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의 복잡도의 폭발적 증가, 그리고 그 결과 필연적으로 발생할 멍청한 결정들의 누적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은 어쩌면 정해진 것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난 그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맘편한 냉소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사회에 빚진 것이 많고, 따라서 더 좋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고민하고 투표를 해야한다. 즉 누구를 선택해도 어떤 분야에서의 퇴보는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용납 할 수 없는 퇴보는 무엇인가” 를 묻고, 그 답에 따라 어떤 후보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용납할 수 없는 퇴보는 2가지다.
하나는 환경이다. 기후위기는 이미 진행중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다음 20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정체(政體)가 계속해서 유지 될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국방비만큼의 예산을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도, 기후문제는 국방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기후문제의 퇴보는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더더욱 용납 될 수 없다. 따라서 관련 예산을 삭감하거나, 기업에게 각종 규제를 풀자고 하는 후보는 용납 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다. 사회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더더욱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한 개인이 전국 규모의 복잡도를 이해할 순 없지만, 시민들이 자기 시의 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의견을 갖는 것은 어렵더라도 가능하다. 각 지자체의 시민들이 더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그 합리적인 결정들이 모여 전국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면 어쩌면 이 복잡도를 길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파괴하는 일, 지방자치제를 약화 시키는 일은 용납 될 수 없다.
한 편 민주주의는 성패는 시민들의 교양이 얼마나 높아지느냐에 따라 달렸다. 우리가 더 똑똑해지고 성숙하려면, 더 안정적이고, 더 여유로운 노동환경이 필수다. 고용이 위태로우면 사람은 과로를 하게 되어 있고, 과로를 하면 교양을 쌓을 수 없다. 전국 어디든 손 내밀면 닿을 곳에 도서관이 있고, 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 유연화”를 입에 담는 후보는 용납 될 수 없다.
나는 이 기준으로 후보들을 가려보려 한다. 당연히 이 기준은 정답이 아니다. 다만 그저,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것만 부탁드리고 싶다. 아무리 뽑을 사람이 없더라도, 아무리 투표할 맛이 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당신의 “용납 할 수 없는 퇴보”에 대해 고민해 주기를, 그리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투표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