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읽지 않았는데, 너무 많이 인용되어, 마치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책들이 있다. 플라톤의 "국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맑스의 "자본", 다윈의 "종의 기원" 등과 같이, 어떤 분야의 시원이 되는 고전들이 특히 그렇다.
이미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이런 책들은 그러나 그 착각이 무색하게, 언제나 직접 읽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움을 늘 안겨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더 친숙했던 고전일 수록 이 의외의 놀라움은 더 큰 경향이 있다. 한 편, 『서유기』 만큼, “드래곤볼”, “갓오브하이스쿨”, “날아라 슈퍼보드”, “마법 천자문” 등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모든 세대에게 친숙한 고전이 또 있을까. 그러니 서유기를 직접 만나보았을 때의 놀라움은 또 얼마나 클까.
서유기는 2024년에도 꾸준히 재해석되고 새로운 컨텐츠의 영감이 되고 있다. 스샷은 게임 “검은신화: 오공”
특히 서유기가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함께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떠나는 이야기임은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정작 서유기가 불교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해설하는, 불교 해설서라는 점은 쉽게 조명받지 못한다. 천자문을 빼고 보는 만화 『마법천자문』 이 지금처럼 재미있을리가 없는 것처럼, “불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책으로 읽었을 때 비로소 서유기의 진가가 드러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오공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지? 오공의 오는 깨달을 오(悟)자요, 공은 빌 공(空)자이다. 그리고 손(孫)은 원숭이 손(猻)에서 짐승 견(犭)자가 사라져 사람의 자손을 뜻하는 손(孫)자가 되는 모양이다. 즉, 孫悟空은, 공(空)을 깨달아(悟), 짐승(猻)이 마침내 사람(孫)이 된다라는, 사실상 서유기의 주요 플롯과 불교의 핵심 교리를 담고있다. 이런 요소를 놓치지 않고 서유기를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지만 불교나 중국 역사에 대해 정말 아무런 배경지식 없는 사람이라면 원전을 처음부터 봤을 때 오히려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여 재미를 느끼지 못할 공산도 크다. 이런 사람이라면, 원전을 보기에 앞서 그 원전을 충분히 공부한 학자가 엮은 해설서를 읽는 쪽이 경제적일 수 있다. 특히 서유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그 재미있는 요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학자의 해설서를 골랐을 때 아마 가장 서유기를 잘 감상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의 서유기』가 딱 그런 책이다.
그러나 딱 해설서로만 이 책을 읽는다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어른의 서유기』는 저자가 현대불교신문에 18개월동안 연재한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연재된 매체가 신문이니만큼, 저자는 단순히 서유기의 해설에서 그치지 않고, 서유기를 통해 당시의 여러 사회문제, 특히 불교계의 여러 문제에 관해 본인의 목소리를 낸다. 단순한 해설서를 기대하고 책을 들었다면, 책이 종종 해설에 충실하기보다, 저자가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내는데 중심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연재가 일종의 칼럼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또한 서유기 자체가 본시 불교의 가르침을 해설하며 당대의 불교계의 모순을 비판하는 이야기였음을 감안한다면, 서유기를 통해 비슷한 양상을 띄는 오늘날의 사회나 불교계의 모순을 비판하는 내용이 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이 현대불교신문에서 연재된 연재물이라는 점에서 파생되는 다른 특징이 더 있다. 비록 책의 본질이 불교 해설서인 서유기를 해설하는 책이지만, 연재된 지면이 불교신문이다보니, 대상 독자가 불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있는 사람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교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다면, 예를 들어 “불교에는 부처란 신이 있고 이 사람이 절대자”라는 수준의 이해(오해)를 하고 있는 상태라면 이 책은 종종 이해보단 혼란을 가중 시킬 수 있다. 최소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 수준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무엇보다도 내게 『어른의 서유기』는 종교로서의 불교를 다시 보게 만들어준 책이다. 이전까지 나는 불교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종교”로만 이해했다. 그래서 명백한 절대자에게 일방적으로 구원을 요청해야 하는 종교들과 달리, “자력”으로 많은 삶의 모순을 이해하고 또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실천하는, 일종의 실천철학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서유기에서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은, 분명 스스로 구도의 길로 나아가나는 “자력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서유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결국 그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많은 경우 관세음보살님이다. 이런 플롯을 현대적인 문화컨텐츠의 문법으로만 읽는다면, 관세음보살이 극의 긴장감을 해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요소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구성을,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의 조화”에 대한 강조로 해석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타력신앙으로서의 불교를 설명해주는 국면이 내게는 가장 인상깊었다.
아무리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내 안에 있다 할지라도, 내 마음이나 주변의 환경같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나의 통제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자력신앙”을 강조한답시고,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식의 태도를 견지한다면, 이는 스스로에게는 오만이고, 타인에게는 잔인이다. 도저히 불도를 실천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장 힘든 순간에, 진심을 다해서, 천수천안 관세임보살님의 또 하나의 눈이자 손이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원수를 이해하고 약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통해서, 아주 가끔씩,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옳은 선택을 하는 기적이 때때로 일어날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 종교로서의 불교와 그러한 종교의 신비를, 『어른의 서유기』는 이제껏 보았던 어떤 종교 서적보다도 내게 가장 와닿는 형태로 설명해 주었다.
『어른의 서유기』는 저자의 불교 및 다양한 철학의 분과에 대한 깊은 식견을 바탕으로 서유기 자체의 재미난 요소들을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살리며 해설하는 탁월한 책이다. 다만 책이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푸는” 형식으로 되어있고, 이러한 “이야기꾼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에 책장을 넘낄 때 소위 말하는 ‘항마력’이… 다소 필요할 수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익숙하지 않은 문체에 곧장 거부감을 느끼고 책장을 덮기에는, 책에 담긴 이야기의 재미와 그 속에 담긴 깊은 통찰들이 너무 아까운 책이다. 부디 그대에게 관세음보살님이 함께하셔 책을 덮지 않기에 충분한 항마력(…)을 나눠주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