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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들의 모음이다. 대부분이 그의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테오와 주고받은 서신 들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가족 및 그가 꾸렸던 (혹은 꾸리려 했던) 화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주고받은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 편지들 속에 그가 어떤 그림을 왜 그리는지에 대해 상세히 적었다. 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면, 그가 천재적 영감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기보단, 지루한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그의 주변을 애정과 인내로 관찰하여 그려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중략)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지루하게 생각하는 해부학, 원근과 비례 등에 대한 공부를 즐겁게 할 정도로 그림에 신념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계속 노력할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기 세계를 완성 할 수 있을 것이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51쪽
그는 천재성을 바탕으로 기초를 건너 뛰고 순식간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명화를 그려낸 사람이 아니었다. 그림에 대한 신념과 사랑을 기반으로, 지루할 수 있는 기초를 튼튼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시선을 온전히 캔버스에 담아낸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림에 대한 그의 신념은 무엇이고 사랑은 어떤 형태였을까?
움직이고 있는 농부의 동작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현대 인물화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예술의 진수이고, 그리스에서도, 르네상스 시기에도, 옛 네덜란드 화파도 하지 않은 것이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34쪽
반 고흐는 생애 내내 궁핍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작품들이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확신했다. 그 확신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는 단순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을 했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이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가치와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 예술가에게 한 순간 돈을 많이 줄 수 있는 상류층이나 추기경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 음식을 일구어내는 감자 먹는 사람들, 우리가 입을 옷을 깁는 직조공들을 그리는 일. 평범한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요구하는 일을 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통해 그가 어떤 그림을 왜 그리고 싶어했는지를 따라가다보니, 책을 읽는 내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나를 휘감았다. 내 주변의 작은 풍경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상품을 계산하는 캐시어나,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나, 한강에 비치는 아파트와 자동차의 불빛들을 다시 한 번 더 진지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 보게 되었고, 그 아름다움을 포착하게 되었고, 이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게 되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나도 흉내내고 싶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