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공부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박사학위를 따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박사를 따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고 종종 운도 따라야 한다. 거기에 뛰어난 직관과 근면함도 필수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사학위가 없다. 물론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들도 일상에서 소소하게 과학적 사고의 즐거움을 누릴 수는 있지만, 인류의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즐거움을 느낄 기회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다.
『별의 계승자』는 박사학위를 따지 않고도 박사들이 느낄만한 과학의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책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2030년의 달의 뒷면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다들 살인사건이라 여긴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자,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달에서 발견된 시체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5만년 전에 생명이 끊어진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류 최고의 과학자들이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모인다. "찰리"라고 명명된 시체로부터 여러 데이터가 수집된다. 더 많은 데이터가 수집 될 수록, 찰리는 인간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동시에 더 많은 데이터가 수집 될 수록, 찰리는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데이터가 수집되면 될 수록 수수께끼는 풀리기는 커녕 모순들만 늘어가고 시간이 갈 수록 그 모순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과학자들은 점점 학파를 이루기 시작한다. 각 학파는 각자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강조하고, 각자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무시하거나 폄하한다. 주인공 빅터헌트는 어느 한 학파에 속하기를 거부하고 그 동안 과학자들이 놓친 것은 없는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미처 지나친 것은 없는지를 천천히 되짚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는 찰리가 숨지기 직전에 올랐던 달의 계곡을 다시 한 번 올라보기로 한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자, 또는 과학자 집단이 과학을 실천하는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폭발시키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답과 풀이방식이 정해져있는 문제풀이로서의 과학이 아닌, 질문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꺼진 방에서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검은 고양이를 찾아 헤메는 그런 종류의 과학을 『별의 계승자』는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실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에 대한 학문적 탐구심 없이 읽기에는 대부분의 대중에게 조금은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간략하게 요약한 과학혁명의 구조"같은 책들이 종종 나오지만, 지식이란 요약되면 될 수록 그 감동은 반감되는 법이다. 『별의 계승자』는 독자들의 흥미를 돋구면서도 과학의 본질과 그것이 주는 감동을 충분히 전달한다. 어떻게 하나의 관측된 사실로부터 여러가지의 해석이 생겨나는지, 그 해석들이 어떻게 대립하는지, 새로운 증거들이 기존의 해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또는 기존의 해석이 새로운 증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굳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토록 몰입해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다만 과학에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읽기에는 버거울 수 있는 책인 점도 사실이다. 특히 초반에는 "이 책은 과학 활동을 다루는 책이야"라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필요 이상으로 수수께끼같은 전문용어가 남발된다. 책의 후반으로 갈 수록 전문용어들 보다는 각 과학의 분야의 근본원리를 중심으로 현상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중학교 수준의 과학 지식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어떤 독자들은 초반의 이러한 묘사들에서 거부감을 느끼고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1장에서는 책의 배경이 "미래"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인물들이 전화 거는 일련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묘사하기도 하는데, 정작 그 미래에 거의 다다른 우리가 보기에는 불필요한 지루한 묘사 같아 보이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1장만 넘어가면 뉴턴의 운동법칙, 열역학의 법칙, 진화론, 상대성 이론에 대한 초보적 교양 정도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순식간에 몰입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눈을 초롱초롱 빛냈지만 차마 대학원까지는 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특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