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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페다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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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sm
나는 학교 수업이 재미가 없었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을까? 재미 없는 것들을 배웠기 때문일까?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사실 굉장히 흥미롭고 유용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어른이 되어서 다른 경로로 같은 내용을 배웠을 때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라며 놀라는 경험을 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면 무엇이 수업을 그렇게 지루하게 만들었을까? 『페다고지』는 이 평범한 질문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로 대답의 일면을 제시한다.
책은 총 4개의 큰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장에서는 “억압받은 자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억압”이란 무엇인지, “해방”이란 무엇인지, 억압받은자들을 위한 교육은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 교육인지에 대한 기초 개념을 정립한다.
해방과 억압에 대해 풀어쓰는 1장의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 맑스주의의 해설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은 단순히 맑스주의를 해설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맑스주의자들이 해방을 추구하는데 있어 자주 간과하는 부분들을 지적한다. 즉, 맑스주의자들은 종종 해방을 “뛰어난 해방자가 선량하고 무지한 민중들을 사악한 자본가로부터 ” 빼앗아오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하는데, 『페다고지』는 해방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이야말로 억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유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는 피억압자가 해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억압자나 ‘아류 억압자’가 되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그들의 사고구조는 그것을 낳은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에 의해 제약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이 되는 것을 이념으로 삼지만, 그들에게 인간이 된다는 건 곧 억압자가 된다는 뜻이다. - 58p
혁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피억압자의 대다수는 — 옛 질서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 혁명을 자신의 개인적 혁명으로 만들고자 한다. - 59p
하지만 이런 프락시스를 얻기 위해서는 피억압자를 신뢰하고 그들의 추론 능력을 믿어야 한다. 이런 신뢰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대화, 성찰, 의사 전달을 시작 할 수 없게 되며(혹은 그 의무를 방기하게 되며) 구호, 성명, 일방적 대화, 지침만을 사용하게 된다. - 84
2장에서는 억압의 구체적인 형태로서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이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서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시한다.
은행적금식교육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주입식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소름끼치게 우리의 학교교육을 묘사하고 있어, 이 책이 과연 반세기 전의 지구 반대편에서 쓰여진 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책에서는 은행적금식 교육의 특징을 노골적으로 나열하기도 하지만, 그 핵심은 일방적인 교사의 능동성과 학생의 수동성에 대한 강조다. 즉, 은행적금식 교육에서 학생은 교육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육을 당하는 존재다.
교사는 현실에 관해 말하면서도 마치 현실이 고정적이고 정태적이며, 구획화되고, 예측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중략) 이 설명식 교육의 뚜렷한 특징은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말의 반향이다. “4곱하기 4는 16이고, 파라의 주도는 벨렘이다”학생은 이 문구를 받아 적고, 암기하고, 반복하지만, 4곱하기 4가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주도’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89p 개인은 구경꾼이지 창조자가 아니다. 이러한 견해에서는 인간이 의식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식의 일개 소유자일 뿐이다. - 94p
이러한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한 대안인 문제제기식 교육은, 학생을 구경꾼이 아닌 창조자로, 교육을 당하는 존재가 아닌 교육에 참여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한다.
문제제기식 교육방법은 교사-학생의 행동을 이분화하지 않는다. …(중략) 학생들은 더 이상 유순한 강의 청취자가 아니라, 교사와의 대화 속에서 비판적인 공동 탐구자가 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재료를 제시하며, 학생들이 각자의 견해를 발표 할 때 예전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재고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자의 역할은 학생들과 함께 독사(doxa, 의견) 수준의 지식이 로고스(logos)수준의 참된 지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창출하는데 있다. - 101p
이렇게 현실을 바라보는 시야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개인들은 더 이상 온순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개선하는데 참여 할 수 있는 용기와 역량을 얻게 된다. 즉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문제제기식 교육의 최종 목표인 인간화의 참 의미다.
참된 행동을 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상태를 결정된 것으로, 즉 고정불변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제한적인 것으로, 따라서 도전해 볼 만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 106p
1장과 2장이 문제의 제기와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3장과 4장은 그 실천의 구체적인 방법과 그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다룬다. 특히 이른바 “해방적 교육”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교육의 결과로 학생들을 해방시키지 않고 억압하게 되는지를 여러가지 실례를 들며 보여준다.
억압자는 민중에게 지금 그대로의 현실을 주입하고 그에 적응하도록 만든다. 불행히도 혁명 지도부 역시 혁명적 행동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은행적금식 기법의 덫에 빠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농민이나 도시 대중들에게 민중 자신의 세계관이 아닌 그들의 세계관에 일치하는 교육을 적용하려는 것이다. …(중략) 민중을 끌어들인다는 말은 혁명 지도부의 어휘가 아니라 억압자의 어휘다. 혁명가의 역할은 민중을 획득하는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신들도 함께 해방되는 데 있는 것이다. - 117p ~ 118p
대화라는 가면을 쓴 설득, 해방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억압교육은 현대의 대안교육 현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책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교사가 노력해야 할 부분들을 대단히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 상세하고 현실적인 그 조언들의 골자를 요약하자면, 생각의 재료를 교사가 처음부터 제시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매번 학생들 각각을 세심히 관찰하고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한 편 연구자들은 처음 그 지역을 방문할 때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보이는 것을 그대로 이해하려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공감적인 관찰자로 처신해야 한다. 물론 연구자들이 그 지역에 올 때 자기 나름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것은 정상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제 연구를 구실로 삼아 그 가치관을 강요하려 해서는 안 된다. - 137p
반 세기전의 지구 반대편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책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폐부를 깊이 찌른다. 공교육에서 폭력적으로 자행되는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한 비판은 말 할 것도 없고, 그에 대한 대안이라면서 등장한 각종 해방교육이 얼마나 그들이 그렇게 비판한 억압적 면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책은 마치 미래를 내다본 것 처럼 정확히 묘사한다.
여러가지 차원에서 탁월한 통찰을 주는 책이지만, 나는 특히 서두에서 말했던 것 처럼, 우리의 학교수업이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는지, 그리고 그 수업이 재미있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책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한다.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과학선생님들은 마치 자연의 모든 원리를 인류가 밝혀낸 것 처럼 말했고, 역사 선생님들은 역사가 왜 이렇게 진행 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필연의 원리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도덕선생들은 마치 우리가 따르는 윤리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자연법칙인 양 얘기했고, 수학선생님들은 대놓고 수학은 암기과목이라고 이야기했다.학교는 마치 세상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 우리가 탐구 할 수 있는 여지, 우리가 변화 시킬 수 있는 여지, 우리가 기여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 처럼 굴었다. 학교 학생에게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세상의 변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마치 없는 것 처럼 행동했다. 이런 공허한 배움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란, 그저 성적 콘테스트에서 남을 이기는 승리의 기쁨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성적 콘테스트에서 이기는 기쁨마저 누리지 못하는 절대 다수의 학생들에게 교실은 더 없이 재미없고 무의미한 폭력적인 공간이었다.
프레이리의 해방적 교육방식을 공교육에 전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공교육은 근본적으로 국가에서 시민들에게 강제로라도 알려주어야 할 필수 지식들을 시민의 자유를 제한해가면서까지 체득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억압과 권위가 일정부분 개입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다. 모든 시민들이 읽고 쓸 줄 알고, 민주주의의 원리와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습득하는 것은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공교육이 프레이리의 교육론에서 아무 것도 참고 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은 지금이라도 마치 교사 및 어른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 하는 것을 그만 두게 해야 한다. 아직 세계에 인류가 밝혀내지 못한 신비가 가득하고, 뉴턴과 아인슈타인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발견과 기여를 할 기회가 학생들에게 열려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들에게 겸허히 고백해야 한다. 역사는 정해진 법칙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훨씬 더 억압적으로 퇴행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 때 비로소 학생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들이 참여하고 만들어낼 미래를 상상하며 적극적으로 배움과 탐구에 참여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