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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린이라는 세계

Created
2023/11/26
Tags
Book
Review
어린이와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는 참 어렵다. 우리는 어린이에게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가르침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보고 대화해야 할까?
위계가 있는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관점은 가장 널리 퍼진 관점이다. 어린이라는 말 자체가, 어리석다에서 파생된 말인 만큼, 이제 어리석지 않아진 어른이, 어리석은 어린이를 인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밀고가다보면, 그 만큼 어린이들의 특수성, 창의성, 주체성들을 억누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어린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어린이를 "가르침을 주는 존재"로 보는 관점도 비슷하게 널리 퍼진 관점이다. 아이들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그 만큼 선입견이란 것이 상대적으로 적고 그 만큼 어른들이 보기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런 사례에서 어른이 아이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상당한 손해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밀고 나가, "어린아이 == 천국에 프리패스 하는 존재 == 무조건 옳은 존재"로 보게 된다면, 이 역시 아이들을 대상화하는, 특히 아이에게 필요한 지도의 기회를 박탈하는 해악을 야기하게 될 것임도 자명하다.
어린이를 “어른의 스승”으로 보는 관점도, 결국 어린이에 대한 대상화로 이어진다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과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관점 모두에게 해악이 있다면,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봐야 할까? 다른 두 관점에 비해선 훨씬 건강한 관점인것 처럼 보인다. 최소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두 관점에 비해, 어린이를 또 하나의 주체로 명확히 인식한다는 점에서, 세 번째 관점은 분명 꼭 필요한 관점이다.
어린이를 대할 때, 같은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세 번째 관점 또한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진다. 특히 세 번째 관점을 밀고나갈 경우에, 자칫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위계관계를 무시하거나 망각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어른은 어린이에게 영향을 덜 받지만, 어린이는 어른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어른은 혼자서 자립해야 하지만,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동등한 관점을 가지려 노력하는 행위는, 마치 "편하게 지내자"고 말하는 부장님의 말씀처럼 공허하고, 심지어는 폭력적이다.
이렇게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명확한 정답이 없는 회색영역이다.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조금씩 다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어린이를 통해 배우면서도, 어린이와 함께 성장하면서도,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의 단순한 도식으로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다만, 그나마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또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흐릿하지만,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어린이와 어떻게 살아나갈지에 대해 흐릿한 "감"을 잡아나갈 수는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이렇게 어린이에 대해, 또는 어린이와 함께 어떤 관점을 가질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에피소드별로, 저자는 다양한 관점으로 어린이와 세상,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정해진 하나의 관점이 있지는 않다. 이야기들은 그저 저자가 마주한 각 상황에 대해 저자가 취했던, 또는 돌아봤던 관점들의 모음일 뿐이다. 각 관점들은 이야기의 상황별로, 주인공별로 고유하다.
예를 들어, 저자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주입하지 않고, 아이들이 각자의 관점을 지닐 수 있도록, 독서교실의 책들과 고유한 관계를 가지기를 바란다.
어린이가 나한테 단지 책을 "소개" 받았다고 느끼고, 책과 자신만의 관계를 맺는 것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부풀어 오른다
그런 동시에, 저자는 분명히 존재하는 위계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어린이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 고심한다.
가르치는 동안은 내게 더 힘이 있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인정하고 힘을 잘 사용해야 한다
어린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책에 나온 에피소드들도, 가슴이 따뜻해질지언정 정답은 아니다.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정답을 묻는 것은 어떤 색깔이 정답이냐고 묻는 질문처럼 덧없다. 다만 책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어린이들의 색이 하얗거나 검은, 내지는 5~7가지의 단순한 색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닌, 총천연색의 세상임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 색들 중 가장 멋진 색을 찾아내야 하는 임무를 띈 수색꾼들이 아니라, 이 멋진 색깔들을 탐험하며 그것으로 나만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화가들이란 점을 책은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수십가지의 에피소드들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책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점은 분명하다. 어린이는 인간이라는 것. 아무리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또는 아무리 선하고 때로는 지혜로워 보이더라도, 결국은 존중받아야 하는, 욕망과 희망이 있는, 사회적인 체면이 있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입장과 역량이 있는, 1인분 이상도 이하도 아닌, 또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 이 분명한 하나의 나침반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이 다양한 관점들의 세계에서 표류하지 않고 탐험을 하는 일은 분명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저자는 그와 어린이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